본문 바로가기

책이야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 / 2022년 12월 31일

728x90
반응형

이제 1시간 뒤면 2022년 임인년이 끝난다. 사실 임인년이라고 하면 돌아오는 음력 1월 1일까지라서 임인년이 끝나는 것은 아닌데도 의례 연도가 끝나는 뒤에 붙이는 관용구처럼 그해를 명명하는 육십 간지로 말하는 그해의 이름을 쓰고 있다. 그리고 특히 올해는 내가 태어난 띠 하고 같은 범띠해라서 좀 더 육십 간지로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2022년 마지막날은 주말이라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올해 64번째 책이고, 두 번째 읽은 김연수작가의 책이다. 거의 2년 만에 김연수작가의 책을 읽었다. 2020년에 읽었던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책은 백석시인의 이야기였고, 힘들었던 시간 그 책을 통해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책은 단편 여덟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첫 번째 단편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제목을 가진 단편이다. 여덟 편의 단편이지만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제로, 나에게는 세 번째 삶이 있다는 말로 여덟 편의 각자 다른 소설이지만 한편으로 이어져 있다.

과거의 우리는 이토록 또렷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왜 미래의 우리를 생각하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그럼에도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게 할아버지의 최종적인 깨달음이었다. 240p


김연수작가의 소설은 내공이 있어야 읽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토리 위주로 흘러가는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문장의 구성하나, 단어 하나를 쓸 때에도 심사숙고, 선택하여 글을 쓴다고 느껴진다. 사실 한번 읽어서 이 소설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래서 뒤에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글이 함께 실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 정리하듯 박혜진평론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전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토록 평범함 미래"에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동반자살, "난주의 바다 앞에서"도 자식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난주와 아들을 읽을 슬픔을 겪고 있는 손유미,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방화를 겪는 "진주의 결말", 아내를 잃은 슬픔을 말해주는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세월호를 연상하게 하는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세명의 바르바라를 만날 수 있었던 "다시 2100년 바르바라에게" 대부분의 소설은 죽음과 죽음 너머에 있는 세 번째 삶을 말해주었고, 이것은 나에게 위로와 희망을 남겨주었다.

시간이 지난 미래에 난 2022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세 번째 삶을 시작하기 전 KO를 당하고 쓰러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다. 바람이, 새 바람이 분다.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은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고요. 동양 챔피언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 내서 젠체하는 거였는데, 나중에 그 '두 번째 바람'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군요. 그리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요." 60p

미래가 없어 동반자살한 어느 연인처럼, 십 년 동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을 기억한 후쿠다 준처럼, 죽을 마음으로 뛰어내린 바다에서 살기 위한 마음을 만난 난주처럼, 타인과 연결되는 정신의 삶 속에서 겹겹의 시간을 살며 차가운 마음에 온기를 만들어나간 할아버지처럼,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아내의 존재를 느끼는 한 사람처럼, 요컨대 삼에 패배한 적 있는 그들처럼 진주에게도 세 번째 삶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희생적인 아버지와 함께했던 유년의 삶, 치매와 함께 시작된 혼돈과 혼돈의 한가운데서 지켜보았던 아버지의 과거, 그 모든 기억들을 품고 시작되는 세 번째 삶, 이 순간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진주에게 불어오는 새 바람을 기다린다. 정신의 삶에서 세 명의 바르바라가 겹쳐진 시간을 함께 살았던 것처럼 진주의 삶과 나의 삶도 중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깊은 시간의 눈으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진주의 슬픔도 나의 슬픔도 새 바람 속에서 조금씩 괜찮아질 것이다. 바람이, 새 바람이 분다. 267p

내년에 시간이 된다면 소설 한 편 한편을 다시금 꼼꼼히 읽고, 그 감상을 적어보고 싶다.


2022.12.31 - [책이야기] - 미자야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미자야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김연수의 소설 「이토록 평범함 미래」 중 "난주에 바다앞에서"에 등장한 미자야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시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런데 책은 중간에 생략..대략난감 그래서 미야자와 겐

raindrops74.tistory.com

2022.12.29 - [책이야기] -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손웅정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손웅정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첫 번째 생각은 "책 읽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였다. 손웅정은 자신의 인생에서 축구를 빼면 남는 게 책 읽기라고 한다. 축구와 독서 이 두 가지가 내 삶을 지탱해온 두 축이

raindrops74.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