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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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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3년 3월까지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이다.

사실 작년에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을 빌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몇 장을 읽고 역시 나는 자연과학(404,도서관분류)는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반납했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긍정적 반응들을 접하다 보니, 대체 이 책이 왜 좋은 책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마음먹고 읽기 시작했고, 2주 정도 걸려 완독 하게 되었다.
 
책의 초반은 "데이비스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의 특별함에 대해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데이비드가 했던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과 역경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그의 모습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위대한 업적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데이비드가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데이비드가 이름을 붙여 주면서 물고기가 존재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읽어 나갔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중반 이후부터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독을 사용해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계층구조를 신봉한 나머지, 계층구조에 아래쪽에 있는 인간은 출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술을 강제로 받게 하는 불임화 수술의 적극적 지지자로 활동했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27p

 

 
저자는 데이비드가 평생의 업적으로 쌓아 올린 그가 남겨놓은 물고기 컬렉션을 부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데이비드의 분류학으로부터 찾아냈다. 1980년대 분류학자들은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류, 포유류, 양서류도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설명해 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가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카프페 디엠'을 말해준다. 자신이 양성애자였음에도 세계가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서 그 틀을 뛰어넘지 못하였던 자신을 뒤로하고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동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책에 처음부터 혼돈에 대해 이야기한다. '혼돈 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거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자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다. 262p

 
책에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 놓으니, 필요한 부분만 읽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또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생각해 내기도 좋다.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 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54p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60p
 
사람들은 물을 뿌리고 또 뿌렸다. 이토록 억눌리지 않는 불굴의 끈기는 어쩌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그건 미친 짓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선에 대한 믿음을 별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가슴속에는 존재하는 따뜻함에 대한 믿음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115p
 
무언가에 대한 믿음, 말과 행동을 초월하는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 그 믿음이 의심이라는 나방에게 갉아 먹힌 믿음이라 해도. 119p
 
데이비드의 정서적 해부도를 쫙 펼쳐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원흉은 그 스스로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던 두툼한 낙천성의 방패가 아닌가 싶다. 데이비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쓴 루서 스피어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확신과 자기기만과 단호함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강화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기 길을 막는 모든 걸 뭉개 버릴 수 있다고 믿는 그의 능력은 자신의 길이 진보로 이어질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면서 몇 배는 더 커졌다. 데이비드는 공개적으로 자기기만을 그토록 공격했지만, 사적으로는 특히 시련의 시기에는 더욱더 자기기만에 의존했던 듯하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긍정적 착각은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 그 심리학자들의 말이 옳았던 것 같다. 202p
 
페니키스 섬의 헛간에서 루이 아가시가 젊은 데이비드의 정신에 관념의 씨앗 하나를 심어 놓은 순간에 다다랐다. 그것은 자연 속에 사다리가 내재해 있다는 믿음이었다. 자연의 사다리,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까지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 203p
 
데이비드가 자연에서 진리를 찾으라는 자신의 충고를 따랐다면, 그 역시 그 논거를 보았을 것이다. 눈부시게 깃털을 푸덕거리고 꽥꽥거리고 콸콸 쏟아지는 반대 증거의 무더기 말이다. 동물은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가정하는 거의 모든 기준에서 인간보다 더 우수할 수 있다. 까마귀는 우리보다 기억력이 좋고, 침팬지는 우리보다 패턴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하고, 주협흡충은 우리보다 일부일처제 비율이 더 높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실제로 검토해 볼 때,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무리해서 곡예를 해야 한다. 우리는 가장 큰 뇌를 갖고 있지도 않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가장 빠르지도 않고, 가장 힘이 세지도, 번식력이 가장 좋지도 않다. 같은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하고, 도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구에 가장 새롭게 나타난 생물도 아니다. 206p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 때문에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럴 순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222p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226p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27p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260p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거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자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다. 262p
 

그 질서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오르디넴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베틀에 단정하게 줄지어 선 실의 가닥들을 묘사하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는 사람들이 왕이나 장군 혹은 대통령의 지배 아래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은유로 확장되었다. 1700년대에 와서야 이 단어가 자연에 적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연에 질서 정연한 계급구조가 존재한다는 추정- 인간이 지어낸 것, 겹쳐놓기, 추측-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뒤에는 지배자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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