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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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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일리는 그의 저서 <시민의 정부에 대한 복종의 의무>라는 장에서 모든 시민적 의무를 편법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다. "사회전반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요구하는 한, 다시 말해서 일반 국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는 기존 정부에 저항하거나 그 정부를 바꿀 수 없는 한 기존 정부에 복종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27p
 
소로가 살던 당시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보여지는 대목이었다. 결국 페이리는 일반국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기존 정부가 어떤 일을 해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일반국민이 별 얘기가 없는 멕시코와의 전쟁은 상관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의 실상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한국은 일반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상황임에도 기존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과 목적을 위해 어떤 일이든 자행하고 있다. 소로가 살던 당시에 적어도 일반국민의 이해라는 측면은 버리지 못했으나, 지금의 한국은 이보다도 더 못한 상황에 처해있다.  
 
투표는 모두 일종의 도박이다. 장기나 주사위놀이와 같다. 단지 약간의 도덕적 색채를 띠었을 뿐이다.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옳으냐 그르냐 노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투표자의 인격을 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지겠지만 옳은 쪽이 승리를 해야 한다면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 문제를 다수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임은 편의의 책임 정도를 결코 넘지 못한다. 대중의 행동에는 덕이란 게 별로 없다. 30p
 
다수가 가진 힘은 어떤 힘인가? 내가 지키는 법보다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나에게 뭔가를 강요할 수 있다. 50p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수결의 절대원칙인 투표를 통해 엘리트를 뽑는 대의민주주의의 나라이다. 1표라도 0.1%라도 더 받은 사람 또는 진영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선발이 된다. 그리고 그 책임은 투표를 한 각각의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투표 이후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투표자의 몫인가? 소로는 투표자의 인격에 거는 것도 아니며, 옳은 쪽이 승리를 해야 한다면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며, 편의의 책임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소로의 이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기본전제에 있어 내가 결정하는 하나의 투표행위가 특별한 것이 아닌 편의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는 것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무지한 대중에 대한 불신에서 나오는 소로의 편엽함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30p의 글을 읽고 소로의 생각에 대한 내 느낌은 투표라는 것에 대한 불신을 가진 소로의 편엽 함이었다면, 50p를 읽은 후에 느낌은 다수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행해지는 불의가 있다면 다수의 횡포를 투표로 포장하는, 그리고 그 투표에 이용되는 일반 대중을 향한 절규처럼 들려온다. 아마도 소로는 책 제목에서도 말해주는 것처럼,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가 투표라는 것을 통해 바꿀 수 없다면 시민으로서 그것을 거부할 권리도 필요하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46p
 
소로가 논어를 인용할 정도로 논어가 유명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소로에게 성경이 아닌 논어의 가르침을 통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보기 드문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나라의 도가 있어도 가난하고 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사실 도를 지키는 쪽이 더 가난하지 않은가? 도를 지키는 나라와 개인이 행복하고 부자가 되는 나라를 꿈꿔본다. 그 반대로 나라의 도가 없는데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그런데 도가 없는대도 귀하고 부끄러운 나라, 개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내 스스로가 도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 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68p
 
인간의 본성을 믿지 못하는 소로도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각각의 개인에게 그에 따르는 정당한 대접을 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 또는 국가을 진정으로 바라는 소로의 애절함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민주주의는 소로가 이상향으로 그렸던, 국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현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여러 국가들도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 경제, 군사적 이익을 창출해 나가는 하나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큰 틀에서 보면 자신의 국가, 자신의 국민만이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과 인격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들은 결국 자신의 이익과 목표 앞에 처참하게 무너지지 않는가?  공자가 말했던 도를 잃어버렸는데도 여전히 부하고 귀한 상황 아닐까
 



2023.04.29 - [책이야기]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제목은 참 낭만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소회가 담긴 말처럼 다가온다. 이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는 22년간 파킨슨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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